지리산

1/29 지리산 서북능선

김동면 2009. 1. 30. 17:49

한 달 전쯤부터 마누라와 같이 28일 밤에 지리산 서북능선 산행을 계획했다.

계획은 인월에서 출발해서 첫밤을 노고단 산장에서 자고 뒷날 힘 남으면 세석대피소까지 가서 자고 남부 능선으로 내려오는 계획과 마누라가

힘들면 뱀사골로 내려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설 전에 폭설이 내려서 약간의 걱정은 했지만 조금 빠르게 걸으면 좀늦더라도 노고단까지는 갈 것으로 예상했다.

나는 서북능선 인월 들머리를 찾기위해 (몇 년 전에 가봤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뒤꽁무니만 따라가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났다 ) 

그래서 인터넷 뒤지고 서북능선 나보다 많이 가본 산우인 풍경님에게 전화로 물어보기도 하고...

 

 

 

 

 

 

 

 

 

 

 

 

 

(위사진은 퍼온 사진임)

 

우연히 인터넷 산방에서 자세히 나온  위에 사진을 프린팅까지 하고 그리고 3일 치 양식과 반찬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동서울에서 밤 12시 차를 타고 새벽 02:50분 인월읍에 도착했다.

편의점 앞의 어떤 분에게 물어보니 여관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골목 따라가니 구인 월교가 아닌 풍천교라는 다리가 나왔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서 편의점에서 위에 프린팅 한사진을 보여주니 굿모닝마트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가르쳐준 딱 반대길이었다.(물로 그 길도  지리산 가는 길은 맞지만 덕두봉 가는 길은 아닌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구인월회관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들머리

 

 

 

 

 

 

 눈길을 오르면서 정말 힘들었던 것은 앞서 내려간 분들이 눈썰매같이 글리세이딩으로 쓸고 내려가서 아주 미끄러웠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사용한 프린스톤 에이팩스 헤드렌턴이다. 조금 무겁지만 아주 밝았다. 예전에 사용하던 페츨 마이오 엑스피보다 몇 배

더 밝았다. 거의 헤드라이트 수준이다.

마누라가 사용하는 것은 에너자이즈 건전지 회사에서 나온 만 오천 원짜리 인데도 가볍고 가격 대비 아주 훌륭했다.

 

 

 

 미끄러운 눈길을 걸어서 덕두봉 정상에 도착했다.

 

 

 

 

 

 

 

 

 덕두봉을 지나서 바래봉으로

 

  

 

 샘물에서 컵라면 먹고 출발

 

 시야가 탁 터여서 천왕봉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중간에 1시 방향의 높은 산이 천왕봉

 

  

 

 팔랑치 까지는 길이 좋았다.

시간을 계산하니 저녁내로 노고단 대피소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날씨가 따뜻한 게 산행하긴 좋았다.

 

 

 여기서부터 점점 사람 다닌 흔적이 드물어진다. 그러다 보니 길이 미끄럽고 걷는 게 늦어진다.

 

 능선의 헬기장에서 행동식과 커피타임

 

 

 

 

  천왕봉 제석봉 아래에 인공구조물이 장터목 산장이다. 몇 번 서북능선 하면서 장터목이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클릭하면 크게 보임

 

 지리산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달궁인가?) 달궁이면 삼한시대에 하나의 부족 국가라고 하는데.... 저렇게 작은 곳이 국가라니~!!!

 

 여기서 탈출로가 있다.

 

 세걸산 오르는 길. 길이 점점 없어진다. 사람 다닌 흔적이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눈이 힘이 없어서 미끄럽고 덕분에 시간이 점점 느려진다.

 

 멀리 하얀 눈이 쌓이산이 나는 노고단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고리봉에서 보니 노고단이 아니라 만복대였다.

 

 

세걸산 바로 아래에서 포기하고 옆으로( 덕동마을) 내려가자고 한다. 그래도 내가 우겨서 세걸산을 올라왔다.

사람 다닌 흔적이 희미하고 거의 안보였다. 그리고 오르막 같은 데는 그 흔적마저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일일이 길을 만들었다.

무슨 산행 잡지에서 읽은 것이 기억났다. 올라갈 때는 신발 앞발로 차면서 디딤대를 만들고 내려올 때는 뒤꿈치로 일일이 찍어서 길을 만들었다.(진짜 그러니까 덜 미끄러웠고 뒷사람이 오르기가 쉬웠다)

중등산화이니 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스패츠도 신는 수밖에 없었다. 거의 무릎 이상 눈이 차올랐다.

신발 바닥에는 눈덩이가 이십 센티 이상 붙어서 걷는데도 불편하고...

땀 무지 흘렸다. (이것이 러셀이란 건가?)

 

지도상에 보니 고리봉 아래로 탈출로가 있다고 한다.

지도상 거리로는 한 시간 반이라고 한다.(나는 지도상 시간보다 빨리 걷는 편이다. 작년 가을에 성삼재 쪽에서 왔을 때는 한 시간 10분 걸렸다) 그런데 눈이 많고 길도 없고 마누라도 늦게 걷고 하니 넉넉잡아 2시간 정도 남았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상상을 정말 벗어났다.

4시간 정도 걸렸다.

설상가상 갑자기 건너편 천왕봉 쪽에서 눈이 쏟아졌다. 덜컥 겁도 났다.

다행히 눈은 십여분 내리다 멈췄다.

 

 내가 러셀 한 길을 걷는 마누라

 

 정령치까지 1.5킬로 남았다는 표지인데.. 이넘의 1.5킬로가 장난이 아니다.

 

 진짜 마누라가 안쓰럽단 생각이 들었다.

산행 시 물을 잘 안 마시던 여자가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산길에 계속 이 발자국이 보였다. 발자국 크기가 길이도 내 등산화 자국보다 1.5배 길고 넓이는 두배 정도 넓었다.

곰 발자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행 중 일부러 스틱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걸었다.

 

 

 

 

 

 

 

 

 

고리봉. 오른쪽 끝 하얀 봉우리가 만복대

 

세걸산에서 4시간 걸렸다. 마누라는 거의 초주검. 정령치는 차량통행 불가능 

나는 이곳에서 탈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마누라 아니면 충분히 노고단 대피소까지 갈 수 있었겠지만.

아쉽지만 포기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했다.

 

내리막길은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길이 좋았다.  마누라는 무릎 아프다고 거의 내리막은 걷지 못한다.

 

3킬로의 거리. 내리막길 한 시간 걸린다는데... 무릎이 아파서 걷다 쉬다를 반복한다.

 4시 20분 출발해서 7시쯤에 고기 삼거리로 내려왔다. 한 시간 정도면 내려오는 길을 3시간 넘게 걸렸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깜깜한 밤에 고기 삼거리에 내려와서 앞에 있는 불 켜진 송어 집?? 같은데 문들 두드렸지만 문은 잠겨있었다.

분명히 불은 켜져 있었지만.... 방향감각도 없고. 길을 전혀 몰라서 풍경님에게 전화해서 버스 정류장을 물었다.

내려왔던 길을 등지고 우측으로 20분 걸어라는 말과 가면서 지나는 차에게 손들어서 태워달라고 해라고 했다. 그래서 몇 번 시도했지만....

모두 피해서 그냥 가버린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비 흠뻑 젖고 큰 배낭 메고 있는 노숙자 같은 사람을 누가 태워주겠어 ㅎㅎ)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걷고 있는데..

어떤 분(우측으로 10분 정도 오면 무슨 여관 있음)이 트럭을 운봉까지 태워주셨다.(이 분은 지리산이 좋아서 이곳에서 여관을 운영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는 것 을 보고 비 오는데 산에 못 가게 하려고 나왔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분이 운봉 우체국 앞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가셨다. 너무  고마워서 안 받으려고 하는데 억지로 기름값을 드리고 버스 타고 남원으로 왔다. 남원에서 갈빗집에서 술 마시면서 몇 시간 만에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느꼈다. 밤차로 서울 갈 수 있었지만

그냥 편하게 목욕 좀 하고 쉬려고 여관을 잡았다.

 

 

 

 

 

산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인간은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까지 자신만만하게 지리산을 들어왔지만..

몇 번 산행해서 쉽게 생각했던 서북능선이  세걸산 지날 때 천왕봉 쪽에서 몰려오는 눈이라는 복병을 만났을 때 아찔한 생각 들었다.

03시부터 시작된 산행에서 19시까지 16시간 동안 사람 한 명 못 봤다. 눈 올 때는 주능선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 한다.

 

목표대로 산행은 못했지만. 그래도 눈 속에서도 아무 사고 없이 지리산을 맛보고 온 것에 만족한다. 무엇보다 날씨가

따뜻하고 눈앞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이는 천왕봉과 반야 봉등 지리 주능선을 하루 종일 열심히 보고 온 것에 만족한다. 

 

그래도 조금 아쉽다.

 

 

 산에서는 아무 이상 없는 다리가 열차 타고 서울 도착해서부터 오른쪽 발 아킬레스건이 아프다.

토요일 야간 산행하자고 연락 왔어도 못 갔다.

하루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킬레스건의 고통이 왼발까지 옮겨온다. 이것 고통이 장난이 아니다.

거의 걷지를 못했다.

어제부터 소염제와 소염 파스를 바르니 조금 나아진다.

왜 그럴까 하고 인터넷 뒤져봐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우리가 보통 하는 말로 산에서 내려오면 찬물로 찜질해줘야 하는데...

나는 그날 여관에서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서 담가서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아침부터 아파야 하는데.

아침에는 괜찮았고~

새마을 열차에서 다리 쭉 펴고 받침대에 올려서 자서 그런가???

좌우지간 기본을 충실해란 말이 떠오른다.

산행 전에 스트레칭. 내려와서 스트레칭. 맞는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