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11월12~16일 까지 지리산태극종주를 끝낸 휴우증으로 무릎부상에 시달려 4개월 가까이 산행을 전혀 못했다.
덕분에 뱃살만 늘고,티비에서 개그맨들이 가는 눈속의 지리산을 보면서 혼자 속쓰렸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책이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이었다.
첫권 부터 읽어면서 지리산에 목말랐던 마음을 충족시키기 충분했다.
3권째 읽을때 나도 똑같이 선인들이 다녔던 길을 한번 따라가볼까? 하는 발칙한 생각이 들었다.
수십개의 산행기가 있었지만 그중에 자기발로 간 산행기는 몇개 없었고 나머진 말그대로 유람록이었다.
승려들이 남여라는 가마를 메고 글쓴이들은 가마에 앉아서 구경하고, 지리산의 멋진 경치를 자기는 한번도 가본적 없는
중국의 어느산과 어느골짜기와 비유하고...
기생을 악공을 대동하고 절간에서 기생잔치를 벌이고..
이 무리들이 한번 지리산에 오면 얼마나 많은 백성과 승려들에게 피해를 끼쳤을까 하니 지금 생각으로 보면
탐관오리가 따로 없었던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윤광안이라는 관찰사의 지리산행을 위해 연인원 일만명이동원되어 천왕봉과 영신대에 온돌초갓집을 짓게하고,천왕봉에서
칠불암까지 숲이 가려 하늘이 보이지 않는 90리 길을 정비하고 새로 만들도록 동원되었고 관찰사가 자는 초갓집이 추울까봐 일천명의 사람들이 관찰사 숙소밖에서 모닥불로 집을 덥혔다는 기록이 있다.
벼슬의 힘으로 종자와 아전들을 대동하지 않고 자기발으로 또는 자비로 산행한 사람들 중에 몇명을 꼽은사람이 이륙. 남효온.박래오 등등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산행기를 보면서 남효온의 산행이 가장 지리산종주를 잘 한것 같았다.그래서 남효온을 따라가려니 시간이 많이 필요할것 같았고, 느림보 마누라 데리고 가려면 턱없이 안될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752년 음력8월10~19일 박래오일행이 산행한 유두류록을 지리산 부분만 겉핥기로 따라 가보기로 했다.
몇달전 부터 계획을 세우고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검색중에 나는 영신사지가 작년에 가봤던 영신대가 아닌것을 알았다.
영신사지를 찾아서 답사한 사진을 보고 이런 사이트로 있구나 하고, 지리산 고수들의 모임인 지리산아흔아홉골을 가입하였다.
영신사를 찾기위해 아흔아홉골 운영자이신 봄이님과 통화도 했다.
처음에는 장터목 대피소 예약을 했지만 마누라와 비박을 생각하고 쉘터도 구입하고 침낭을 한개 더 구입했다.
그런데 29일 70리터 배낭을 싸면서 혹시 하는 마음에 장터목에 전화하니 눈이 발목까지 왔다고 한다.
급수정하여 대피소와 민박을 하기로 결정하고 40리터 배낭으로 바꿨다.
29일 서울남부터미널에서 24:00에 출발하는 진주행 버스를 승차.
30일 진주 3:30분 도착해서 해장국 한그릇 먹고 중산리행 06:10분 출발하는 첫차를 기다렸다.
07:30 분쯤에 중산리 도착해서 제일 먼저 천왕사를 찾았다.
천왕사에서는 성모상을 촬영못한다고 했지만, 5천원 시주하고 모르게 몇장 찍었다.
칼바위 앞에서 굼벵이 마누라와 한장
법계사 전경
1752년 음력8월10~19일 사이의 법계사에는 3칸 짜리 건물 한동이 있었다라고 한다.
작년에 가봤던 문창대 같았다.
올라가면서 점점 눈이 많이 있었다.
천왕샘.
박래오의 글에는 중봉아래에 법계사가 있고 그래서 중봉을 지나서 천왕봉으로 갔다고 기록 되어있다.
내가 글 읽어면서 헛갈린게 바로 이 대목이다.
지도상으로 보나 길 나온거로 보나 지금 현재의 중봉이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는 길옆에 성모사에서 사는 사람이 물길러 오는 샘이 있다고 했다.
난 그 샘이 여기 천왕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봉을 지나서 이 아래에 있는 천왕샘 있는곳으로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는 것은 이치에 안맞는것 같다.
그리고 중봉은 천왕봉 아래 오목한 봉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천왕봉 성모사 터
원래 성모사당에 있었던 지리산 성모상.정수리 부분에 칼자국같은 흠이 나있는게 보인다.(이 흠은 왜구들이 인월황산에서 이성계에게 대패하고 이곳에 와서 칼로 내려쳤다고 전해내려온다)
[지금은 천왕봉 아래 중산리 천왕사라는 절에 있다. 중산리 도착해서 먼저 이곳을 들러서 찍은 사진.]
경주옥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경주옥돌이면 경주에서 나는것일거고.옛날에 무거운것을 어떻게 천왕봉 꼭데기 까지 옮길 수 있다는게 놀랍단 생각이 들었다.
성모상을 보니 숙연한 느낌과 비록 돌이지만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일월대]
박래오 일행이 이곳에서 시도 읇고 경치를 바라보았다는 일월대.
누가 언제 새긴지는 모른다고 한다. 18세기 부터 등장 한다고 한다.(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에서 발췌)
전에는 전혀 눈여겨 보지 않은 각자들을 성모사 근처의 바위들을 빙빙 돌면서 찾는 중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바위에 새겨저 있었다.
이것을 찾았을때 어떤 짜릿한 희열감 같은게 느껴졌다.
예전 산행은 목적지를 정해 놓고 시간을 아껴서 단축시키는 그런 산행이었는데...
그런 산행도 좋지만 이런 산행은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래오는 혈암으로 기록 하고 있다.( 통천문)
여기서 넘어졌다. 카메라가 위에 다이얼이 고장났다. 다행이 찍는데는 고장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아이젠을 착용했다.
박래오가 말한 마가목
여기서 제석단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 검색으로는 장터목에서 10여미터 올라가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또는 화장실에서 백무동 가는길로 가다가 찾아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시간 이상 헤메이지 만 찾지를 못한다.
눈이 길을 다 덮었다.
배고프고 허기져서 도저히 못견디고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4시반 쯤 도착해서 저녁을 해먹어니 살것 같았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조금 더 위로 가야 호귀당이라는 당집이 나온다 한다.
박래오 일행이 성모사에서 자고 이곳 호귀당(당집)에서 아침을 먹고 제석단을 거쳐 백모당쪽으로 가다가 중산리줄신의 행인을 만나
그 사람을 따라 올라와 호귀당에서 다시 점심을 먹고 밤중에 삼지촌으로 내려온다.(삼지촌이 어딜까 생각했다. 의신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삼지촌에서 자고 새벽에 출렁거리는 다리를 지나고 고개를 넘어서 10리를 걸어서 범왕촌에서 밥을 먹었다는 글을 보고 내가 추측컨데 현재의 벽소령 아래 빗점골 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술한잔 하고 바라보는 장터목의 일몰]
날씨는 매섭고(영하4도) 바람은 장난 아니게 불지만 해지는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진게 처음인것 같았다.
둘째날 4시쯤 출발했다. 5월1일의 지리산 모습이다. 작년 똑같은 날짜 비슷한 시간에 무박태극 종주하면서 이곳을 지나갔지만 눈 자국
하나 없었다.
털진달래도 봉오리 생겼고,노고단 즈음에서는 털진달래도 활짝 피었었다.
나도 이제껏 수십번 대피소에서 잤지만 이번은 좀 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코골고 이빨가는것은 자기 의지가 아니가 때문에 이해를 한다. 그렇지만 밤새 문자소리 신호음과 방귀를 힘을 주고 끼는 놈이 한놈 두놈이 아니다.방귀소리에 놀래서 잠이 깼다면 할말 다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빨리 준비하고 살짝 나가는게 예의 인데...단체로 온 어떤팀은 불켜놓고 떠들면서 일상대화를 30분 이상을 떠든다.
준비하고 나오는데 5분이면 되는것 아닌가?
좋은산에 와서 싸우기 싫어서 나와서 마누라 깨워서 바로 출발했다.
세석쪽에서 한명또는 두명의 사람이 장터목으로 럿셀하면서 왔던 자국이 나있다.
우리가 세석쪽으론 처음인것 같았다.
촛대봉 바로 아래 봉우리에서 일출을 본다. 일몰 일출 다 보기 힘든데 ~
[촛대봉 사자바위 앞]
촛대봉에서 영신사지가 어딜까 눈 씻고 찾고 있다. 멀리 11시 방향의 노고단과 반야봉이 보인다.
알바하다 찍은 집터.
세석대피소에서 아침을 해먹고 7시쯤에 영신사지 찾으러 간다.
역시 우려했던 데로 길이 눈에 덮혔다.
모두 눈으로 덮혀서 구분이 안된다.
할 수 없이 샛길 찾는 방법대로 국립공단에서 가지말라고 나뭇가지로 막아놓은곳(항상 이런곳에 길이 있다) 을 들어갔다가 나오고...
두시간 정도 알바를 하고 할 수 없이 세석대피소로 다시 돌아왔다.
내 핸드폰(LG텔레콤)은 이곳 세석에서 터지지 않아서. 다른분께 빌려서 지리구구 운영자이신 봄이님께 전화를 했다.
봄이님 또한 산행중이라 전화가 들렸다 안들렸다 한다.
그래도 영신사지는 꼭 찾아야겠단 생각으로 이제는 거꾸로 찾기로 했다. 영신봉 정상부터 훑어 가기로 했다.
좌고대 인것 같다
옆에서 보니 좌선하는 부처상같이 보였다. 붓다의 수제자 가섭을 닮았다는가섭대
여기서 수도하면 도를 깨친다는 좌고대
샘터 옥청수?
좌고대 꼭데기 고운 최치원의 각자가 있다고 하는데 안보인다.
영신사지
창불대를 찾으러~
[창불대]
[병풍바위]
창불대 정상에 올라갔다.
김종직 남효온....박래오가 감탄 한 것 처럼 앞뒤가 탁 터인것 같이 전망이 좋았다.
그런데 바로 앞에 세석대피소에서 보이는것 같아서 서둘러 내려왔다.
옛날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밭터 같았다. 돌로 담을 쌓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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