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 전에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도 하고 동지이기도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뿔뿔히 흩어져서 다른곳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명 남희는 해고 된지 10 년이 넘었고...
일주일전 오석이와 잠깐의 카톡중에 지리산 가자는 말이 나와서 즉흥적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저질 체력들 데리고 가는산행이라 전북학생교육원에서 출발을 계획했지만..
짧은것을 원하는 사람들 땜에 정령치에서 시작해서 노고단 일박 후 반야봉 들러서 뱀사골 하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기를 너무 잘했습니다. 학생수련관에서 출발했다면 오늘 전에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지 않았을겁니다.ㅋㅋ)
한시간 거리의 만복대를 거의 두시간 걸려서 올라옵니다.
두 명은 지리산 처음이라 그런지 약간의 운해에도 탄성을 지릅니다.
오석이
만복대에서 막걸리 한잔 후 동릉 까지 갔다옵니다.
맞은편의 반야봉
맞은편의 노고단이 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
우리가 가야하는 능선
샘터에서 밥먹고 술마시고 또 출발
고리봉에 도착해서 또 한잔
어설픈 폼들 ㅋ
촌스런 폼 ㅋ
눈앞에 펼치진 반야봉.
성삼재 즈음에 비가 쏟아지고... 설상가상 오석이 신발창이 날라가고..
여기 라푸마 매장에서 14만원짜리 등산화 한컬레 급구해서 신었는데...
이 신발 진짜 미끄러웠음. 뒷날 화엄사길 내려오는데 벌벌 떨면서 내려오는것 보고~
역시 신발은 신발 전문회사 것 사야겠단 생각듭니다.
성삼재 도착하니 폭우가 쏟아집니다.
비 그칠때 까지 화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시간을 화장실에서 기다리다 비 맞고 대피소 까지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도중에 비가 더 옵니다. 그것도 천둥번개와 폭우를 동반한 비 때문에 푹 젖어서 올라갑니다.
주지육림에 빠지는 시간
아침에도 천둥번개 때문에 산행을 못하고
비 그치길 기다리다 할 수 없이 화엄사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오팀장
화엄사 하산길이 이렇게 멀줄이야 ㅜㅜ
예전에 혼자 산행때는 화엄사에서 노고단대피소 까지 2시간 반 만에 올라갔던 기억이 나는데...
이건 뭐 거의 기어가는 수준 ㅋ
설상가상으로 또 폭우를 만납니다.
낙뢰와 함께 말입니다.
죄 지은게 많은 우리들 무서웠습니다.
어디 조금의 비 피할때가 없어서 고생했습니다.
다음 부턴 이런 산행때는 배낭에 작은 타프 같은 것을 꼭 지참해야겠단 생각했습니다.
7킬로를 5시간? ㅋㅋㅋ
어제 산행도 시속 1.2킬로
이왕 늦은것 화엄사 구경을 하기로 합니다.
저도 화엄사 수십번 지났지만 한번도 들어가본 적 없습니다.
그런것 보면 지리산행은 세어보진 않았지만 몇백번은 다녔지만 천왕봉 일출 한번도 못봤습니다. Why?
해 뜨는것 볼려고 기다려 본적이 없어니까요.
1487년 9월 27일에서 11월 13일 까지 지리산 유람을 하신 추강 남효온의 글 중에서
최석기님의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중에서 발췌함
7일(계유).
스스로 선산 김씨라고 하는 수좌(首坐) 도민(道敏)이, 내가 양식이 떨어진 것을 보고 쌀 다섯 되를 보내왔다. 최충성 필경과 김건 자허 등이 내가 지급암(知及庵)에 있다는 기별을 듣고서 사람을 보내 안부를 전해왔다.
밥을 먹은 후 아래로 내려와 황둔사(黃芚寺)를 둘러보았다. 절의 옛 이름은 화엄사로, 이름난 승려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절이다. 절 양쪽 주위는 모두 대숲이고 절 뒤에는 금당(金堂)이 있었다. 금당 뒤에는 탑전(塔殿)이 있었는데 매우 선명하고 깨끗하였다. 꽃이 핀 차나무와 큰 대나무, 그리고 석류나무∙감나무가 주위에 둘러 있었다. 넓은 들판을 굽어보니 긴 시내가 가로질러 있었는데 그 아래쪽이 웅연(熊淵)이다.
절의 뜰 한가운데 석탑이 있었다. 탑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기둥이 있고, 네 기둥 가운데 서서 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부인상(婦人狀)이 있었다. 한 승려가 말하기를 “이 부인상은 비구니가 된 연기의 어머니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석탑 앞에 또 작은 탑이 있었다. 네 귀퉁이에 탑을 떠받치고 있는 네 개의 기둥이 있었으며, 그 기둥 사이에 서서 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남자상이 있었는데 부인상을 향해 우러러보고 있었다. 남자상이 바로 연기이다. 연기는 옛 신라 사람으로 어머니를 따라 이 산에 들어와 절을 세웠다. 그를 따르던 제자가 천 명이나 되었으며, 화두(話頭)를 정밀하게 탐구하여 선림(禪林)에서 조사(祖師)로 불렀다.
저녁에 최필경∙김자허가 나를 찾아왔다. 이 절의 법주(法主)인 설응(雪凝)이 자기 방에 나를 묵게 하고 배와 감을 보내왔다. 최필경 등이 밤중까지 등불을 밝히고 『소학(小學』․『근사록(近思綠)』을 강론하였다. 설응이 비록 승려지만 예전에 제학(提學)을 지낸 유진(兪鎭)에게 『중용장구(中庸章句)』를 배운 사람으로, 우리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흘려버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8일(갑술).
이 절의 비물선사 (非勿禪師)가 나에게 밥을 보내왔다. 최필경과 김자허가 술상을 차려 대접하면서 나에게 봉천사에 가서 머물자고 하였다. 봉천사 주지 육공도 우리에게 봉천사로 가자고 거듭 청하였다. 그래서 나와 필경 등은 돌 봉천사로 갔다. 밤에 『근사록』을 보았다. 그때 지급암의 오수좌(悟首坐)가 우리들의 성정(性情)에 대한 강론을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마음을 붙잡고 성찰하는 공부는 유가나 불가가 다를 것이 없군요”라고 하였다.
9일(을해).
설응이 제자를 시켜 한지를 가지고 봉천사로 와서 시를 지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오언의 장편시를 지어 ㅂ이별의 징표로 삼았다. 최필경․김자허와도 작별하였는데, 최필경이 백미 넉 되를 주었다.
나는 황둔사 앞의 대로를 따라 구례 정정촌(鼎頂村)을 지났다. 강변을 따라가다가 웅연 가 벼랑길을 지났다. 온 산은 비단을 수놓은 듯 울긋불긋하고, 콸콸 흐르는 물소리는 산 너머로 퍼져나갔다. 걸어서 30리쯤 가니 정신이 상쾌하고 기분이 산뜻해졌다. 진주에 속한 화개동(花開洞)에 이르렀다. 웅연 가 벼랑길을 벗어나서 쌍계천(雙溪川) 서쪽 가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시내 양쪽에 인가(人家)가 병풍 속의 그림처럼 환했다. 진주와 구례의 경계에 있는 조그마한 토성에서 20여 리를 더 걸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시내를 건너니 양쪽에 문같이 생긴 바위가 있었는데, 雙溪石門(쌍계석문)이라는 네 글자가 큰 글시로 새겨져 있었다. 이 글씨는 최문창후(崔文昌候)가 손수 슨 것이다. 석문 1, 2리쯤 안쪽에 쌍계사가 있었다.
내가 승려에게 묻기를 “어디가 청학동입니까?”라고 하니, 승ㄹ 의문이 말하기를 “석문 밖 3~4리쯤 못 가서 동쪽에 큰 동네가 있는데 그 동네 안에 청학암(靑鶴庵)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곳이 옛날의 청학동인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내 생각으로는, 이인로(李仁老)의 시에 “지팡이를 짚고서 청학동 찾아가니, 숲 속에선 부질없이 원숭이 울음소리뿐. 누대에선 삼신산(三神山)이 아득히 멀리 있고, 이끼 낀 바위에는 네 글자가 희미하네”라고 하였으니, 그는 성문 안 쌍계사 앞쪽을 청학동이라고 여긴 것이 아닐까? 쌍계사 위 불일암 아래에도 청학연(靑鶴淵)이란 곳이 있으니, 이곳이 청학동인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중 남효온의 산행기에서 발췌 )
5백년 전의 남효온님이 본 모습과 지금의 우리가 본 모습은 똑 같고 공감하고 있다는게 신기합니다.
오른쪽 연기조사가 탑속의 어머니를 향해서 공양하는 모습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을 보니까 예전에 읽었던 추강 남효온의 지리산 유람록 생각이 납니다.
이 분이 지리산 화엄사에 와서 이 돌탑을 보며 글 쓴게 기억납니다. 그 분은 1487년 9월 27일 부터 10월 13일 까지
웅석봉 아래에서 부터 걸었어니.. 추강 남효온이 이곳 화엄사에서 왔을때는 아마 10월1~8일 정도 쯤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2014년에 6월에 보는 저도 똑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어머니와 아들 연기선사 이야기 말입니다.
열차 기다리다 지쳐서 졸고 있는 노숙인
구례구역 앞에서 또 한잔하고 열차를 기다립니다. 한시간 이상을 말입니다.ㅎㅎ
첫날 산행 기록입니다.
시속 1.2킬로 이지만, 어차피 목적을 가진 산행이 아니라 마음통하는 벗들과 술에 취하고 지리산에 취하고 벗에게 취하는
그런 산행을 하였습니다.
비록 목적지인 반야봉과 뱀사골은 가지못했지만, 이번에 못간다고 해도 지리산이 옮기는것 아니니까요.
다음에 가을전에 편해질때 다시 가기로 했습니다.
'지리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9/20 상위마을-만복대-묘봉치 (0) | 2014.10.06 |
---|---|
오랜만의 화대종주 (0) | 2014.06.24 |
벗들과 함께한 왕시루봉 (0) | 2014.03.06 |
피아골-용수바위-무착대-직전마을 (0) | 2013.10.29 |
한신계곡-천왕봉-중산리 (0) | 2013.05.02 |